자연 생태계의 寶庫, DMZ
1953년 7월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위도 38도를 경계로 하는 휴전선을 긋고 이로부터 2km씩 후퇴한 비무장지대(DMZ)를 만들었다. 이 비무장지대는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를 금지하도록 약속한 지역이다. 그리고 남쪽은 다시 비무장지대 후방으로 5~20km 밖에 민간인이 거주하거나 산업활동을 할 수 없는 민간인 통제선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흘렀지만 그곳에선 아직 남북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에는 여전히 수많은 남북의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어, 휴전협정 후 그대로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은 50년 긴 세월 동안 그곳에 지구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연생태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롭고도 진귀한 야생 동식물들이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꾸려가고 있다. 오염이 안 된 산과 물, 계곡에는 산양,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의 희귀 야생 동물들을 볼 수 있으며, 금강초롱꽃, 금강봄맞이꽃, 금강제비꽃, 비로용담 등 희귀식물들은 그 건재함을 알려준다. 이 야생화들은 치열한 영역 다툼을 통해 얻어낸 값진 터전에서 드넓은 군락을 형성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곳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황홀한 자연공원은 그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DMZ 주변 야생화 보고서
이 책은 저자가 1987년 내무부 주최 ‘민통선 북방 지역 종합학술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비무장지대 주변 야생화를 탐사한 조사 기록이다. 저자인 김태정 선생은 6월 30일부터 9월 30일까지 장장 90일 동안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하는 동부전선에서부터 경기도 강화, 교동도에 이르는 서부전선까지를 왕복하면서 이곳 야생화들을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6월 초순에 고성의 통일전망대 부근에 피었던 큰달맞이꽃이 강화도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탐스런 열매를 맺고 있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후에 서해 해상의 휴전선 지역을 뱃길로 탐사하였다. 이 기록은 1994년 봄, 『휴전선의 야생화』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하였다가 이후 휴전선 지역 생태계에 관한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함으로써 이번에 개정판을 내게 된 것이다.
노루오줌, 마타리, 금마타리, 기린초, 물레나물, 염아자, 둥근이질풀, 잔대, 동자꽃, 양지꽃 등 우리 주변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는 우리의 토종식물들이 비무장지대에서는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우리 꽃이 아닌 원예종으로 외지에서 들어와 버젓이 자라고 있는 외래 식물들도 간혹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더 이상 사람들의 손길에서 안전하지 않다. 최근 민통선 지역 출입이 다소나마 완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여기저기 걸린 철조망이 서서히 걷혀가면서 점차 그 모습을 보기 어려운 야생화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책에 실린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종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렇듯 휴전선 155마일에 이르는 저자의 탐사 코스를 따라가면서, 아직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휴전선 철조망 주위로 피어난 야생화들의 눈부신 향연을 감상해 볼 수 있다. |